티스토리 뷰
9·11 사건 관련 주요 음모론 개관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테러 공격(9·11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공식 발표와는 다른 여러 음모론들이 제기되어 논란이 이어져왔다. 이러한 음모론들은 미국 정부 고위층의 내부 공모부터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사전 폭파, 나아가 사건으로 인한 금융적 이익까지 다양한 주장을 포함한다. 본 글에서는 9·11 테러와 관련해 유포된 주요 음모론의 내용과 그 근거, 이를 뒷받침하는 주장들(다큐멘터리 Loose Change 등에서 제기된 논거 포함), 그리고 이에 대한 공식 조사 결과와 전문가들의 해명, 음모론이 미친 사회·정치적 영향 및 최근까지의 연구 동향을 객관적으로 정리한다.
주요 음모론적 주장
9·11 테러 이후 등장한 음모론들은 크게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대표적인 주장으로는 미국 정부 또는 내부 세력의 공모·개입설, 세계무역센터(WTC) 건물의 폭파설, 펜타곤 공격 의혹설, 그리고 금융적 이득 음모론 등이 있다. 각각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 내부 공모설 및 미국 정부 개입설 : 일부 음모론자들은 9·11 테러가 알카에다의 기습이 아니라 미국 정부 내부의 세력이 개입한 자작극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미국 정부 혹은 정보기관이 이번 테러를 사전에 알고도 묵인했거나(방치설), 심지어 직접 공모하여 “안에서 벌인 작전(inside job)”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가 이 사건을 통해 침체된 지지율을 높이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추진하여 군수산업 등 특정 세력이 이익을 얻었다고 의심한다. 프랑스의 티에리 메이상(Thierry Meyssan) 등 일부 인사는 “9·11 테러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배후 조종한 미국 백악관 내부 작전의 결과”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펼쳤다. 이러한 내부 개입설은 정부에 대한 불신, 반미 감정, 반유대 정서 등이 결합되어 확산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세계무역센터 폭파설(통제된 철거설) : 두 대의 여객기 충돌로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WTC 1, 2)과 별도 피해를 입었던 47층 규모의 WTC 7번 건물의 붕괴 방식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주장이다. 음모론자들은 “건물이 미리 설치된 폭발물에 의해 통제 해체되었다”고 의심한다. 실제 여객기 충돌 지점보다 훨씬 아래층에서 연기와 잔해가 분출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점, 붕괴 속도가 마치 자유 낙하에 가깝게 빠르게 진행된 점, 그리고 불길에 휩싸였던 강철 구조물이 완전히 붕괴된 것은 전례가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든다. 특히 WTC 7번 빌딩의 경우, 항공기 충돌 없이 비교적 경미한 화재만으로 오후에 갑자기 완전히 붕괴된 것이 전형적인 폭약 해체 방식처럼 보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9·11 당시 현장에 있던 일부 인물들조차 처음에는 “마치 의도적으로 폭파해 무너뜨린 것 같다”고 증언했을 정도다. 음모론 진영에서는 여러 목격자(경비원, 소방관 등)의 증언을 인용해 “붕괴 직전에 연쇄 폭발음을 들었다”거나, 잔해에서 고온으로 녹은 금속물질(일부는 열화Thermite의 흔적이라고 주장)을 발견했다는 등의 주장을 펴기도 한다. 요컨대 공식 발표처럼 단순히 항공기 충돌과 화재 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전에 설치된 폭탄에 의해 세 건물이 계획적으로 철거되었다는 설이다.
• 펜타곤 미사일설 및 항공기 관련 음모 : 9·11 당일 피격된 미국 국방부 펜타곤 건에 대해서도 음모론이 많다. “펜타곤은 여객기가 아니라 미사일로 공격당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음모론자들은 펜타곤 건물 외벽에 난 구멍의 크기가 보잉 757 여객기의 크기와 맞지 않고 잔해가 거의 보이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테러 당시 찍힌 사진상 펜타곤의 충돌부 직경이 약 16피트(5m)에 불과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는 거대한 여객기가 남길 파괴 흔적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사실은 미국 군이 발사한 미사일 혹은 폭탄이 펜타곤을 타격한 것이라는 음모론으로 이어졌다. 또한 펜타곤에서 회수된 잔해 중 엔진부 부품의 크기가 757엔진으로 보기엔 작았다는 주장이나, 테러 전에 펜타곤이 유사 상황 대응훈련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당시 펜타곤 인근 CCTV 영상들이 정부에 의해 압수되어 전체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도 의혹을 키웠다. 한편 UA 93편 항공기(펜실베이니아에 추락)의 경우, 공식 이야기처럼 승객들의 저항으로 추락한 것이 아니라 미군 전투기에 격추되었다거나 아예 비밀리에 착륙 후 승객들이 대피했다는 등 여러 설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사고 현장에서 기체 파편이 비교적 소량 발견되고 일부 가벼운 잔해 조각들이 수 km 떨어진 곳까지 날아간 점, 추락 당시 상공에서 흰색 작은 비행기가 목격된 점 등을 들어 “공중에서 폭발하여 산산조각이 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 밖에도 9·11 관련 각종 “미스터리”로 불리는 의혹들—예컨대, 고도에서 휴대전화 통화가 불가능한데 비행기 승객 통화내용이 발표된 점(음모론자들은 음성 위조 기술로 통화 내용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함), 오사마 빈 라덴의 범행 자백 영상이 가짜로 보이는 점, FBI가 초기 공개한 납치범 명단에 살아있는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 등—이 음모론 커뮤니티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종합하면, 항공기 관련 음모론들은 테러에 사용된 비행기 및 공격 수법에 공식설과 다른 숨겨진 진상이 있다고 믿는 주장들이다.
• 금융 및 이익 관련 설 : 9·11 테러로 인해 누군가 거액의 이득을 얻었을 것이라는 음모론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테러 직전에 관련 금융 시장에서 이상 징후가 있었다는 주장인데, 9·11 직전 며칠(9월 6~10일) 동안 아메리칸·유나이티드 항공 주식 등에 대량의 풋옵션 매도 주문이 발생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전에 테러 정보를 안 사람들이 주가 폭락에 베팅해 이익을 보려 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또한 세계무역센터 건물 임차인이었던 래리 실버스타인이 테러 발생 두 달 전 대형 보험에 가입했고, 테러로 건물이 파괴된 후 막대한 보험금을 수령하게 된 점도 음모론자들의 단골 소재다. Loose Change 등에서는 실버스타인이 보험 계약 시 “반드시 테러 피해를 보상한다”는 특별약관까지 넣어두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두고 사전에 테러를 예견한 보험사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딕 체니 부통령과 연관된 군수업체 할리버튼(Halliburton) 등이 테러 이후 전개된 “테러와의 전쟁”으로 막대한 이득을 올린 점도 지목된다. 음모론자들은 이러한 정황들이 9·11 테러 배후에 거대 자본과 권력이 결탁해 있었다는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믿고 있다. (일부는 9·11 전날 국방부에서 발표된 2조 3천억 달러 규모의 국방비 행방 불명 사건이 펜타곤 테러와 관련 있다는 식의 주장도 편다.)
이와 같은 음모론들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다. 특히 2005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루스 체인지(Loose Change)>는 앞서 언급한 대부분의 주장을 종합적으로 제기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9·11을 미 정부의 자작극(false flag)으로 규정하고, WTC 1·2·7의 폭파설, 펜타곤 미사일설, UA93편 의혹, 통화 조작설, 보험사기·사전 거래설 등 음모론 진영의 논거를 차례로 펼쳐 보였다. Loose Change는 인터넷을 통해 수천만 회 이상 재생되며 음모론 담론을 대중에게 널리 알렸고, 이후 여러 언어로 번역되거나 해외 언론에까지 소개되는 등 국제적으로 9·11 음모론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음모론 측 주장 근거
음모론자들은 위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증거와 논거를 제시해왔다. 그들이 “공식 발표의 허점”이라고 지적한 대표적인 근거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WTC 건물 붕괴 관련 증거 주장 : WTC 쌍둥이 빌딩과 7번 빌딩의 붕괴 모습은 음모론 측 주장에서 핵심 증거로 자주 언급된다. (1) 쌍둥이 빌딩 붕괴 시 각 층에서 아래로 뿜어져 나온 먼지와 연기(이른바 “스퀴브” 현상)는 폭약이 순차적으로 터질 때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해석이 제기되었다. (2) 건물이 10초 남짓의 거의 자유낙하 속도로 주저앉은 점도 지적되었다. Loose Change 등은 “어떠한 구조적 저항도 받지 않고 한꺼번에 무너진 듯한 이런 급속한 붕괴는 사전 배치된 폭발물 동시 폭파로 주요 기둥들이 일순간 절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3) 철골 구조물은 화재만으로 붕괴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핵심인데, 음모론자들은 “여객기 연료(제트 연료) 연소 온도는 약 426~815℃로 강철의 융점(1510℃)에 훨씬 못 미친다”며 화재 원인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 9·11 이전까지 고층 철골빌딩이 화재로 완파된 사례가 없었음을 들어, “jet 연료만으로 철골을 녹일 수 없다”는 주장이 유명해졌다. (Loose Change에서도 “WTC 1,2,7은 화재로 붕괴된 최초의 강철 마천루”라는 주장을 폈다.) 이들은 타워 내 화염 온도가 충분히 높지 않았다는 근거로 당시 출동했던 소방대원의 무전 (“불길을 두 줄의 호스로 진압 가능하다”는 언급)과 주변 건물들의 사례를 제시했다. (4) WTC 7번 건물의 붕괴는 음모론자들이 꼽는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다. 비행기 충돌도 없었는데 오후 5시경 완전히 내려앉은 이 건물에 대해, “건물주가 ‘철거(pull it)’를 지시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붕괴 영상이 폭파 해체와 흡사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Loose Change는 WTC 7에 경미한 파편 피해와 일부 국지적 화재만 있었음에도 갑자기 내려앉았다며, 사전에 폭탄이 설치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7번 건물 붕괴 원인을 둘러싼 FEMA와 NIST의 초기 조사 발표 내용에 일부 모순이 있었던 점도 음모론 확산에 이용되었다.
• 펜타곤 공격 관련 증거 주장 : 펜타곤 현장 사진과 목격담에서도 음모론자들은 여러 의문점을 제기했다. (1) 앞서 언급했듯 충돌부 구멍의 크기가 비행기 치고 작다는 점, 동체나 날개 파편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은 “미사일 또는 소형 드론 공격설”의 근거가 되었다. Loose Change 1편 초기 버전은 아예 “펜타곤을 타격한 것은 미사일”이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2) 현장에서 발견된 엔진 부품(터빈)의 규격이 보잉 757의 엔진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었고, 정부는 그것이 비행기의 보조동력장치(APU) 부품이라고 발표했으나 음모론자들은 여전히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였다. (3) 숙련도 낮은 조종사(테러범 하니 한쥬어)가 여객기를 고도로 정교하게 조종하여 펜타곤 지표면에 근접 비행 후 명중시킨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4) 펜타곤 인근 감시카메라 영상이 대부분 공개되지 않은 채 정부에 확보된 점도 “은폐 의혹”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FBI는 인근 주유소와 호텔 등의 CCTV 영상을 수거해갔고, 2006년에야 펜타곤 보안카메라 일부 영상을 공개했는데, 저해상도라 비행기 형체는 식별하기 어려웠다. 이로 인해 “정부가 영상 공개를 꺼리는 이유가 있다”는 의심이 지속되었다.
• 항공기 및 테러 진행 관련 의혹 : 음모론자들은 항공기 납치 및 테러 진행 과정 전반에도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1) 승객들과 지상 간 이루어진 것으로 발표된 여객기내 전화 통화 일부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주장이다. 2001년 당시에는 기내 휴대전화 통화가 기술적으로 어려웠고, Loose Change는 “유나이티드항공이 나중에야 기내 휴대전화 수신 장치를 설치했다”고 언급하며 9·11 당시의 통화는 조작되었을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음성 변조 기술로 가짜 통화를 만들어냈다는 극단설도 나왔다. (2) UA 93편 추락 현장의 잔해 및 목격담도 음모론의 단골 근거다. 추락 현장이 비교적 좁은 범위에 깊게 파묻혀 있고, 비행기 동체가 산산조각난 탓에 희생자 유해와 잔해가 작은 조각으로 흩어졌는데, 이를 두고 “공중에서 미사일에 맞아 폭파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추락지점에서 1.5마일(약 2.5km) 정도 떨어진 인디언 레이크에서 가벼운 종이 조각 등이 발견된 사실이 알려지자, “격추 당시 벌어진 폭발로 수 km 밖까지 파편이 날아갔다”는 설이 퍼졌다. (다만 인디언 레이크에 인체 유해가 떠올랐다는 유언비어는 입증된 바 없다.) 또한 추락 직후 상공을 선회한 작은 흰 비행기 목격담이 언론에 보도되자, 이를 “격추 임무를 띤 전투기”로 해석하는 음모론이 유행했다. (3) 위와 같은 주장과 더불어, 진지한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FAA(연방항공청)와 NORAD(북미방공사령부)의 대응 지연”을 의문시하며, 정부가 의도적으로 전투기 요격을 늦췄거나 방임했다는 관점도 논의되었다. 실제 9·11 당시 미국 방공망은 혼란을 겪었고, 작전 훈련이 우연히도 같은 날 진행 중이라 대응이 늦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두고 “의도적인 무대 설정”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 기타 제기된 근거들 : 납치범 신원 의혹도 있다. 9·11 직후 당국이 발표한 19명의 범인 명단 중 일부와 동일한 이름의 인물들이 생존해 나타났다는 초기 보도들이 있었다. 이는 동명이인 혼동 등으로 곧 정정되었으나, 음모론 커뮤니티에서는 “범인으로 지목된 몇몇은 사실 살아있다”는 식의 주장이 지속되었다. 또한 알카에다의 범행을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였던 빈 라덴의 자백 비디오가 가짜라는 주장도 있었다. 영상 속 인물이 빈 라덴과 외모가 다르다(일명 ‘가짜 빈 라덴’)는 근거 없는 의혹이었다. 마지막으로, 9·11 사건으로 이익을 본 인물·집단들이 있다는 정황을 음모론자들은 중요한 단서로 본다. 앞서 언급한 대량 풋옵션 거래나 보험금 수령, 전쟁 특수로 인한 군수업체 수익 등이 그것이다. Loose Change는 실버스타인의 보험금 수령을 특히 부각하며, 그 보험 약관에 반테러 특별조항이 있었다고까지 주장했다. 이처럼 음모론 측이 제시한 다양한 “증거”들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상당수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서는 사건 직후부터 정부 기관과 과학 전문가들의 조사가 진행되었고, 대부분 반박과 검증이 이루어졌다.
공식 발표 및 전문가들의 반박 근거
미국 정부와 독립 조사위원회, 그리고 많은 과학자·전문가들은 위 음모론 주장들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하나하나 반박해왔다. 9·11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2004)와 FEMA/NIST의 기술조사 보고서(2002~2008), 그리고 민간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알카에다에 의한 테러 공격이라는 공식 견해를 뒤집을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광범위한 조사 결과들은 모두 동일한 결론을 지지하고 있으며,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과학적·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다. 주요 쟁점들에 대한 공식 입장과 반박 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세계무역센터 붕괴에 대한 해명 : WTC 쌍둥이 빌딩과 7번 건물의 붕괴 원인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상세한 조사를 통해 규명되었다.
(1) 구조 손상과 화재: NIST 보고서에 따르면, 여객기 충돌로 건물 내부 내력 기둥들과 방화 시설이 심각히 파괴되었고, 유조급의 제트 연료가 건물 곳곳(엘리베이터 통로 등)으로 퍼지며 광범위한 화재를 일으켰다. 충돌 충격으로 내부 방화재 마감이 탈락하여 강철 구조가 그대로 고온에 노출되었고, 사무실 내 막대한 가연물(카펫, 책상, 서류 등)이 타며 온도가 1,000℃에 달하는 국지적 화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강철은 약 593℃에서 강도가 절반 이하로 약화되고, 1,000℃에 이르면 90% 이상 강도 상실이 일어나므로, 비록 철골이 녹아내리진 않았어도 충분히 휘어지고 버티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2) Pancake식 붕괴 메커니즘: 위와 같은 이유로 충돌층 부근의 기둥들이 버티지 못하고 상부 구조가 주저앉으면서, 상층부의 거대한 하중이 연쇄적으로 아래층을 덮치는 이른바 “팬케이크(pancake)식” 붕괴가 일어났다. 상층 건물의 엄청난 질량이 떨어져 내리며 하층 구조를 순차적으로 붕괴시키는 진행 속도는 매우 빨라, 붕괴 시작 후 약 10~15초 내에 건물이 완전히 내려앉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자유낙하와 거의 유사한 속도인데,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 등 과학자들은 붕괴가 시작되면 급속한 전파는 불가피하며, 관측된 속도도 물리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수준임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었다.) 붕괴 과정에서 각 층의 공기가 순식간에 압축되면서 측면 창문으로 분출한 먼지 구름은 폭발물이 없더라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되었다.
(3) WTC 7번 건물: 7 World Trade Center의 붕괴에 대해서는 2008년 NIST가 별도 보고서를 내놓았다. 공식 조사에 따르면, 1번 타워 붕괴 시 발생한 거대한 잔해가 7번 건물 남쪽 면을 강타하여 지상~10층 사이 건물의 25%가량이 도려내질 정도의 구조적 손상을 입었고, 동시에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소화시설이 붕괴로 손상된 탓에 장시간 방치된 화재가 건물 내부를 깊숙이 약화시켰다. 특히 5층 등에서 시작된 화재는 7시간 이상 지속되었고, 건물 동쪽의 핵심 기둥(Column 79) 주변 부재들이 열팽창으로 변형되며 연결부가 파단, 동쪽부터 내부 붕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내부 중심부가 무너져내리자 양쪽 외벽을 지탱할 수 없게 되어, 동쪽 → 서쪽 순으로 건물 전체가 붕괴되었다고 NIST는 결론내렸다. 겉보기에 마치 바닥부터 동시다발 폭파한 듯 일순간 내려앉은 것은, 이미 내부 구조가 무너지며 건물 하중이 내부로 집중된 결과이며, 폭발물이 없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설명이다. 한편 *“불길 속에서 강철 빌딩이 무너진 전례가 없다”*는 음모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WTC 7처럼 소방 대응이 어려운 특수 상황에서의 장시간 화재 사례 자체가 드물었으며, 이 정도 규모와 조건의 화재는 사상 최초였기 때문에 전례가 없었던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 펜타곤 피격에 대한 반박 : 펜타곤에 대한 각종 의혹도 공식 조사와 다수 목격자 증언을 통해 반박되었다.
(1) 충돌 흔적: 미국 토목학회(ASCE)가 펜타곤 건물 피해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외벽에 난 주요 충돌 구멍의 실제 지름은 약 75피트(23m) 정도로 파악되었다. 음모론자들이 흔히 인용한 “16ft 구멍”은 지점이 다르거나 초기 오보이며, 여객기 동체가 남긴 전체 파괴 범위는 생각보다 컸다는 것이다. 다만 흔적이 비행기 형상 그대로 남지 않은 이유는 한쪽 날개는 충돌 직전 지면에 먼저 부딪혀 분리되고, 다른 날개도 건물 외벽에 부딪혀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강화 콘크리트 구조인 펜타곤 벽체는 가벼운 항공기 날개가 관통하기에는 어려웠고, 결국 동체와 엔진 등 밀도가 높은 부분만 내부로 돌파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 내부 C-링 벽에 난 12ft(3.6m) 구멍도 음모론에서는 “미사일 통과 흔적”이라 주장되지만, 전문가들은 주 착륙장치(랜딩기어)와 같이 단단한 부품이 관성으로 뚫고 지나간 흔적으로 결론내렸다.
(2) 잔해와 증거: 펜타곤 현장에서 항공기의 잔해가 거의 안 보인다는 주장에 대해, 구조 전문가인 알린 킬셔마이어(Allyn Kilsheimer) 등 최초 대응자들의 증언이 결정적 반박 근거가 되었다. 킬셔마이어는 현장에서 여객기의 블랙박스를 수거하고, 동체 꼬리 부분 조각을 손으로 직접 들었으며, 외벽에 남은 날개 충돌 자국까지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사고 직후 현장에 도착한 수많은 목격자들이 “분명한 아메리칸항공 소속 여객기가 매우 낮게 날아와 펜타곤에 충돌했다”고 일치되게 진술하고 있으며, 탑승자들의 유해 신원도 DNA 검식을 통해 대부분 확인된 바 있다. 잔해가 외부에 적게 보인 것은 비행기의 대부분이 펜타곤 건물 내부에 박혀 소실되었기 때문으로, 이는 여타 고속 충돌 사고와도 부합한다. 실제 충돌 후 펜타곤 외벽 일부가 붕괴되면서 잔해와 불탄 잔존물이 내부 잔해더미에 섞여버렸고, 외부에 남은 잔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3) 기타 펜타곤 관련 해명: 한쥬어 등 테러범들의 조종 능력 논란에 대해 항공 전문가들은 “고난도 착륙이 아닌 단순 돌진 비행이었고, 목표가 건물이라 어차피 부딪히면 끝나는 상황이기에 정확한 조종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757기가 펜타곤에 접근할 당시 지면에 거의 스칠 정도로 낮게 날았는데, 이는 초보 조종사가 항공기를 수평 유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도가 낮아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펜타곤 음모론의 핵심 주장들은 여러 증거의 오해나 단편적 정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 항공기 추락 및 테러 진행에 대한 반박
(1) UA 93편 격추설: 펜실베이니아에 떨어진 UA 93편 여객기에 대해서 미국 정부는 격추를 검토했으나 실제 격추 전에 추락했다는 공식 입장이다. 음모론이 제기한 당시 상공의 “흰 비행기”는 미군 전투기가 아니라 인근을 지나던 민간 제트기(닷소 팰컨 20 비즈니스 제트)로 밝혀졌다. 이 항공기는 당시 FAA의 요청으로 추락 지점 상공을 선회하며 상황을 확인해준 후 착륙한 것으로 공식 보고되었다. 추락 현장의 잔해 분포에 대해서는, 작은 파편이나 종이 조각 등이 1~2마일 떨어진 곳까지 날아간 것은 당시 바람과 폭발 충격으로 충분히 설명되며, 인디언 레이크에서 인체 유해가 발견되었다는 등 주장은 확인된 바 없다고 지역 당국은 밝혔다.
(2) 통화 내용 논란: 기내 전화 통화의 경우, 대부분의 주요 통화는 당시 기내에 설치된 항공전화(airfone)를 통해 이루어졌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몇 건의 휴대전화 통화는 고도가 낮았던 초기나 하강 시도 중에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FBI 기록상 통화 시각·방법이 남아 있다. 음모론에서 제기한 음성 위조설 등은 기술적·시간적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일축되었다.
(3) 요격 지연 의혹: 9·11 당일 납치기 요격이 늦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 조사에서는 군과 FAA의 통신 혼선과 당시 전례 없는 사태로 인한 대혼란이 주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또한 공교롭게도 그날 진행되고 있던 방공 훈련이 실제 상황 판단을 늦춘 점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고의로 전투기를 지연출격시켰다는 증거는 없으며, 관련 녹취와 보고서를 종합하면 군 지휘부도 상황 파악에 상당히 애를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요약하면, 테러 진행상의 미심쩍어 보이는 요소들은 모두 초유의 테러 상황에서 빚어진 혼란과 우연한 정황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 금융 거래 및 이득 의혹에 대한 검증 : 9·11 전후의 금융 이상 현상도 공식 조사 대상이 되었다.
(1) 사전 주식거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01년 9월 12일 즉시 특별조사에 착수, 테러 전 수주일간의 주식·옵션 거래 9백만 건 이상을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사전에 테러 정보를 이용한 내부자 거래가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되었다. 항공사 주식에 대한 대량 풋옵션은 일부 기관투자자의 거래로 확인되었으며, 조사 당국은 이들과 테러 연루 가능성을 면밀히 살폈으나 어떠한 연관성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보험사·금융권 주식의 변동도 비슷한 결론이었다.
(2) 보험금과 금전적 동기: 세계무역센터 보험의 경우, 래리 실버스타인은 계약 당시 테러 보상조항을 추가했단 음모론자 주장과 달리 표준적인 재산보험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테러로 인한 손실액 산정과 보험금 청구 과정은 법정 공방을 거쳐 이루어졌으며, 결국 실버스타인 측은 약 45억 달러를 수령했다. 그러나 이는 WTC 재건 비용 등으로 사용되었고, 결과적으로 그가 특별한 이득을 본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한편 9·11 이후 전개된 전쟁으로 군수기업 등이 막대한 이윤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테러 배후와 직접 연결되는 증거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 고위층이 전쟁 이익을 노리고 일부러 테러를 방치하거나 조작했다면 관련 내부 고발이나 물증이 나왔을 법하나, 20년이 지나도록 구체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위 내용과 같이, 9·11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주장들은 공식 조사와 과학적 분석을 통해 대부분 반박되었다. 미국 Popular Mechanics 잡지는 2005년 특별팀을 꾸려 9·11 관련 주요 음모론을 조목조목 검증했고, 200여 명의 전문가 인터뷰와 수천 페이지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음모론이 제기한 기술적 의문점들은 모두 합리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폴리티팩트(PolitiFact) 등 팩트체크 기관들 역시 9·11 관련 풍문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여 대중에게 알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 차원에서도 9·11 위원회 보고서 외에 관련 문서를 속속 공개하고(FOIA 요청 등으로 비밀문서 해제), 음모론 확산을 막기 위한 정보 제공에 힘썼다. 과학계에서는 구조공학, 화재공학 연구자들이 학술 분석을 통해 WTC 붕괴 메커니즘을 해명했고, 저명한 공학 학술지에 관련 논문들도 발표되었다. 종합하면, 현재까지 공식적인 결론은 9·11 테러는 알카에다에 의한 공격이며 미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근거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물론 조사 과정의 세부를 두고 이견이나 의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거대한 음모를 뒷받침할 구체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음모론이 미친 사회·정치적 영향
음모론의 확산은 사회와 정치 분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 9·11 테러 이후 초기에는 미국 내 애도와 애국심의 물결이 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 공식 발표에 의문을 품는 여론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음모론 커뮤니티(소위 “트루서(truther)” 운동)가 조직화되면서, 상당수 대중이 대안적 서사에 노출되었다. 실제 여론조사들을 보면,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9·11 관련 음모론을 믿거나 가능성을 의심해왔다. 2006년 조그비(Zogby) 설문에 따르면 *“미 정부와 9·11 위원회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응답자가 미국인의 42%에 달했다는 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보다 직접적으로 *“9·11이 정부 내부의 자작극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일부 조사에서 10~20% 내외로 집계된 바 있다. 물론 질문 문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음모론을 확신하지 않더라도 공식 설명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대중이 꽤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터넷과 미디어는 이러한 대중 심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Loose Change 같은 영상물은 유튜브 등에서 폭발적 조회수를 올렸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911Truth’ 해시태그를 단 토론 그룹과 밈(meme)들이 활발히 공유되었다. 음모론을 믿는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의 주장을 강화하며 일종의 확증편향적 “에코 챔버”를 형성했다. 이는 음모론이 단순한 소수의 견해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 운동이나 서브컬처로 자리잡는 데 일조했다. 실제로 9·11 음모론 지지자들은 자체 집회나 전단 배포 운동을 벌이고, 기념일마다 재조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몇몇 전·현직 정치인이나 유명인도 새로운 조사를 촉구하거나 음모론에 공감을 표명해 논란이 되었는데, 이는 주류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한편으로 음모론 확산은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심리적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일부 유가족들은 음모론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책임 소재를 흐리며, 가족의 죽음을 정치적 아젠다에 이용한다고 느껴 강하게 반발했다.
국외의 경우, 9·11 음모론은 반미 성향을 띤 일부 사회에서 더욱 각광받기도 했다. 중동 지역 등에서는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자작극을 벌였다”는 설이 비교적 널리 퍼져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과 국제정치적 불만과 맞물려 확산된 측면이 있다. 예컨대 이란의 전 대통령 마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등이 국제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9·11의 배후는 미국 정부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9·11 음모론은 이처럼 세계 각지의 반미 여론에 기름을 부은 면도 있으며, 미국의 도덕적 권위에 일정 부분 타격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학계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들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게 되었는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9·11 음모론은 이후 음모론 심리학 연구의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연구에 따르면, 권위에 대한 불신, 사회적 박탈감, 정보 과잉 시대의 혼란 등이 음모론 신봉에 영향을 준다. 또한 9·11 이후 정부가 강화한 안보정책(예: 애국자법, 감시 강화)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음모론을 하나의 저항 담론으로 소비하는 현상도 관찰되었다. 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민주사회에서의 “대안 서사” 욕구로 해석하기도 한다. 반면 공학·역사 분야 학자들은 음모론을 반박하는 연구와 교육을 진행했다. 몇몇 대학에서는 9·11을 사례로 비판적 사고와 허위정보 감별을 가르치는 수업을 개설하기도 했다. 한편 소수이지만 학계 내에서도 음모론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물리학자 스티븐 존스나 건축가 리처드 게이지 등 전문가 일부는 공식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며 “9/11 Truth” 운동에 참여했다. 이들은 “9·11 연구 학회”를 결성하고 독자적인 실험·연구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전반적인 학계에서는 이들을 주류 학술담론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반적으로 볼 때, 9·11 음모론이 남긴 가장 큰 사회적 영향은 정부에 대한 대중의 신뢰 훼손이라는 평가가 많다. 음모론이 20년 넘게 사그라들지 않고 남아있는 현실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정부 공식 발표보다 대안설을 믿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민주사회에서 건강한 의심과 견제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동시에 근거 없는 주장들이 사실처럼 퍼져나갈 위험성을 일깨웠다. 이후 일어난 여러 사건(코로나19, 각종 총기사건 등)마다 음모론이 등장하는 현상에도 9·11 음모론 “선례”가 영향을 주었다는 지적이 있다. 한 언론은 *“사람들이 자기 정부가 이런 참극을 저지를 수 있다고 믿는 현실 자체가 사회에 충격”*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만큼 9·11 음모론은 단순한 풍문을 넘어, 정보 시대의 사회 심리와 정치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 및 추가된 정보
9·11 테러 발생 후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노력과 관련 연구는 이어지고 있다. 공식 차원의 최종 보고는 2004년 9·11 위원회보고서와 2008년 NIST WTC7 보고서 등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이후에도 정부는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공개/업데이트하고 있다. 2021년에는 연방수사국(FBI)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인사들과 9·11 테러범의 연계 의혹과 관련된 기밀 문서를 일부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9·11 음모론과는 결이 다르지만, 테러 배후를 둘러싼 추가적인 진실 규명 요구(특히 희생자 유가족들이 요구한 사우디 개입 여부)에 응한 조치였다. 그 결과 사우디 정보요원 일부와 테러범들의 접촉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으나, 사우디 정부 차원의 개입 증거는 확실치 않은 상태다. 이러한 추가 정보 공개는 음모론자들의 주장과는 무관하게, 국제테러리즘의 맥락에서 진행되는 연구로 볼 수 있다.
한편 민간 차원의 재조사 움직임도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2010년대 후반에는 ‘건축가·엔지니어 모임(AE911Truth)’의 지원을 받은 알래스카대 페어뱅크스 캠퍼스(UAF) 연구팀이 WTC 7번 건물 붕괴를 재해석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2019년 발표된 이 UAF 연구보고서는 “화재만으로 7번 건물이 완전히 붕괴되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결론을 내리며, 공식 설명에 도전했다. 해당 연구는 음모론 진영에 큰 화제가 되었지만, 정식 동료평가를 거쳐 학술지에 실린 것은 아니며, 방법론을 둘러싸고 다른 공학자들의 반론도 제기되었다. NIST는 UAF 연구를 검토한 후에도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여전히 화재 붕괴설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는 학술적으로 WTC 붕괴 원인에 대한 주류 vs 비주류 논쟁이 현재도 진행 중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전체 공학계에서는 대체로 NIST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어, 음모론 지지 연구는 소수 의견에 머물러 있는 형국이다.
기타로, 9·11과 관련된 부차적 정보들도 시간이 흐르며 보완되고 있다. 테러 이전에 미국 정보기관들이 놓친 단서들과 정보 공유 실패에 대한 반성 연구, 정부의 위기관리 체계 개선 등이 그것이다. 이는 음모론이라기보다 정책적 교훈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또한 9·11 기억과 관련한 사회문화 연구, 음모론의 영향에 대한 미디어 연구 등 2차적 연구들도 다수 나왔다. 예컨대 한 연구에서는 9·11 음모론 확산이 인터넷상의 허위정보 문제를 부각시켜, 이후 거짓 정보에 대응하는 팩트체크 산업의 성장을 촉발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페이스북, 유튜브 등은 9·11 관련 음모론 영상에 팩트체크 레이블을 붙이거나 알고리즘 노출을 줄이는 등 조치를 취해왔다. 이는 음모론이 정보 플랫폼의 규제 논의에도 영향을 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9·11 사건에 제기된 갖가지 음모론은 초기 충격과 혼란 속에서 탄생하여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내부 공모설, 폭파설, 정부 개입설, 금융 이익설 등 주요 주장들은 각각 나름의 근거를 내세웠지만, 철저한 조사와 과학적 반박에 직면하며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은 대중의 정부 불신과 정보환경 변화 속에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오늘날까지도 일부는 믿음을 거두지 않고 있다. 9·11 음모론 현상은 현대사회에서 음모론이 형성·확산·정착되는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연구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에게 객관적 사실 검증과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교훈으로 남아 있다. 앞으로도 추가적인 정보 공개와 연구가 계속 이어지겠지만, 현재까지는 9·11 테러의 책임이 알카에다 이외의 다른 주체에게 있다는 믿음을 뒷받침할 공인된 증거는 없다는 점이 대체적인 결론이다. 음모론을 둘러싼 논란은 점차 잦아들고 있으나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으며, 이는 우리 사회에 남은 신뢰와 진실에 대한 숙제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성적인 글쓰기란 (0) | 2025.02.03 |
---|---|
세금을 피하는 부자들의 꼼수 (0) | 2025.02.02 |
의식이 물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0) | 2025.02.01 |
전기에너지의 실체는 전류? 전자기장? (0) | 2025.01.31 |
세균 예찬 (0) | 2024.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