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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파사나 수행 ‘호두마을’ 거사 손병옥씨

“돈도, 명예도, 삶까지도… 다 놓아 줍시다”
5년전 내로라하는 기업인
부족함이 없는 그 삶에 가슴한켠 알 수 없는 허무감
왜 이리 아등바등 사는건지
우연히 위파사나를 접하고 모두 다 놓고 떠났다
수행터 일구고 머슴일 도맡아

‘무슨 일을 하든 놓는 마음으로 하라/어떠한 보상이나 칭찬도 기대하지 말라/조금 놓아버리면 조금의 평화가 올 것이다/크게 놓아버리면 큰 평화를 얻을 것이다/만일 완전히 놓아버리면 완전한 평화와 자유를 얻을 것이다/세상을 상대한 그대의 싸움은 끝을 보게 되리라’(타이의 위파사나 선사 아찬차)

과연 놓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광덕산 줄기 부원골 가는 길은 이에 대한 자문의 여정이다. 길이 다한 곳에 위파사나 명상센터 호두마을이 있다. 호두마을 표석 옆 대문 안으로 고요하고 단아한 수행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텃밭에선 한 남자가 거름을 뒤집고 있다. ‘호두마을 손 거사’로 불리는 손병옥(51)씨다. 그가 공양간으로 안내하며 “산나물 비빔밥을 먹자”고 한다. 봄이 오기도 전인데 고사리와 취나물 등 온갖 산나물들이 놓여 있다. 그가 지난해 봄 호두마을 수행 참여자들을 먹이려고 뒷산을 헤매며 뜯어와 살짝 데쳐 냉동시켜 놓은 것들이다.

승려도 아닌 거사의 몸으로 호두마을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위파사나 수행처로 일궈낸 그의 정성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그는 이처럼 불목하니(절 머슴)나 다름없이 온갖 일을 도맡아 한다. 그에겐 오히려 좌선이나 행선보다 이런 삶이 바로 ‘놓음’의 과정이었다.

그는 이런 수행이나 목가적인 삶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불과 5년 전까지도 그는 인천지역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인이었다. 그는 빌딩이나 아파트 등 건물의 냉난방설비에 매달 인건비로만 10억원씩 지출하던 기업체의 사주였다.

△ 호두마을 안에 있는 텃밭에서 손병옥씨가 봄 파종을 준비하고 거름을 뒤집고 있다.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서 1남5녀의 독자로 태어난 그는 20대 때 막연한 구도심으로 통도사에 잠시 출가했다. 그러나 그는 20년 동안 돈과 출세를 구하며 기관차처럼 달렸다.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이 대단해 그의 사업은 줄기차게 성공가도를 달렸다. 아름답고 착한 부인과 1남1녀의 자녀, 튼튼한 사업체, 큰 집, 고급차, 부동산 등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을 그는 거의 빠짐없이 갖췄다.

그렇게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갈수록 가슴 밑바닥에선 알 수 없는 허무감이 밀려왔다. 회사 수익금의 사회 환원을 위해 대기업체에서 둘 법한 전담직원을 두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 사업에 참여해 매달 그가 후원한 가정만 120곳이나 됐다.

그가 언젠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했을 때 주위에선 “세상 사람 모두 그래도 당신은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이나 병, 부도에 의해 불가피하게 포기할지언정 그가 평생을 불태운 사업을 스스로 그만둘 리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가 우연히 위파사나를 접했다. 일체는 무상한 것. 명예도, 돈도, 우리의 삶까지도…. 그는 주위의 만류를 뒤로하고 결단을 내렸다. 무상한 것에 집착하는 삶이 아니라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인과 자녀에겐 ‘재산 상속이 없을 것’이라고 공포했고, 자녀들도 출가해 수행자가 되기를 기원했다.

△ 호두마을 명상홀에서 위파사나 좌선과 행선(걷기) 명상 중인 수련 참가자들.

곧 잘나가던 회사를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당시는 산기슭 황무지였던 이곳에 홀로 내려와 수행 터전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주위에선 “오죽 돈이 많으면 저럴까” 하고 수군대기도 했다.

그러나 한꺼번에 10억이나 100억을 기부하는 것보다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나가는 것은 그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시험이었다. 그의 묵묵한 헌신이 쌓여 이제 주말과 집중수련 기간이면 수십 명씩이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마음을 챙기며 평화를 얻고 있다. 일체의 불교 의식 없이 오직 마음을 평화로 이끄는 수행만 하기에 그리스도교인들도 이곳 참여자의 30%에 이른다. 처음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인과 자녀들도 “심신의 고통스럽던 사람들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보람 있는 일”이라고 이제 이 일을 적극적으로 돕게 됐다. 호두마을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도 한 사람의 수행 참여자로 되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여명이 수행하는 명상홀 2층에서 내려오다 보니 게시판엔 ‘길을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한 사람이 ‘놓음’으로써 연 새 길을 수많은 수행자들이 걷고 있다. 그 마음, 그 얼굴들에 지금 평화가 깃들고 있다.

천안/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 천안 호두마을은

기복의식 없이 오로지 수행에만
주위 의심 눈초리도 부러움으로

3천여 평에 8채의 크고 작은 명상홀 등이 자리한 호두마을이 있는 부원골은 예로부터 절에서 나와 홀로 수행하는 수도승들의 토굴터로 유명하다. 이 인근에 승려들이 ‘토굴’로 일컫는 조그만 집들만도 20여개가 있다.

처음엔 우리나라 불교의 수행법이 아닌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파사나를 한다고 해서 인근 사찰과 승려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전혀 기복적인 의식 없이 오직 수행만 하며, 모든 재정을 한 푼도 숨김없이 공개하고, 일반인들이 승려들보다 더욱 열심히 정진하자 이제 ‘호두마을을 본받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곳에서 하는 위파사나란 몸과 마음, 감각, 진리를 철저히 관찰해 이 모든 것이 무상하며, ‘독립적인 실체(나 또는 너)’가 없음을 깨닫는 수행이다. 석가모니가 스스로 개발해 깨달음을 얻은 관법(관찰)이다.

이 마을은 2002년 사단법인으로 출범했다. 손씨 부부는 이사진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호두마을사단법인은 정신과병원장 최훈동씨를 비롯한 7명의 운영위원들이 이끌고 있다.

호두마을은 미얀마에 수행한 비구니 혜송 스님과 김열권 법사, 정원 법사 등이 지도하고 있다. 오는 4월부터는 미얀마 타타마난디국제선원의 우 에인다카 사야도(선사)가 미얀마 선사로는 최초로 상주하며 지도한다.

조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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