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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과는 상관없이 머릿말 글이 마음에 들어 카피해본다.

특히 마지막 구절 ❝우리는 내 안의 아기 코끼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 짠하게 다가온다. 단순히 짠한게 아니라 우리의 지향점이야 한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머릿말

 

프롤로그

 

파잔(phajaan)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이다. 야생에서 잡은 아기 코끼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둔 뒤 저항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날을 굶기고 구타하는 의식. 절반의 코끼리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지만, 강인한 코끼리는 살아남아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돈벌이의 수단이 된다. 코끼리는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없을 테지만, 그들의 영혼은 산산이 부서지고 본능의 심연에서 어렴풋하게 냉혹한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엄마를 찾아선 안 된다는 것과, 몽둥이의 고통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코끼리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단순하다. 자유를 향한 자기 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하고,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은 척하는 것이다.

 

우리는 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파잔 의식을 시행하는 몽둥이를 든 가난한 자들에게 분노하게 된다. 하지만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그러하듯 이것이 단순히 선악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파잔 의식을 시행하는 자들도 피해자일지 모른다. 그들의 영혼도 이미 산산이 부서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들이 처음 아기 코끼리를 구타하는 것을 주저할 때, 그의 가정과 사회는 그에게 친절하게 말했을 것이다. 질문을 멈추라. 그것은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네가 지켜야 할 사랑하는 이들의 생존을 위해 어른스럽게 행동하라. 결국 그는 자기 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했을 것이고, 세상이 혼란스럽지 않은 척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다. 당신은 어느 곳에서는 매 맞는 코끼리였고, 다른 곳에서는 몽둥이를 든 자였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내가 피해자였는지 가해자였는지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이미 파괴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기원전의 머나먼 과거를 살아가던 고대의 인류도 오늘날의 현대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우리만큼이나 세상이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문명이 발생하고 도시가 건설됨에 따라 사람들은 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나 사회라는 상징적 질서로 이주했다. 사람들간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고 재화는 부족했으며 이에 따른 갈등과 대립은 심화되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몽둥이를 든 자였고, 동시에 매 맞는 코끼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혼돈 속에서 현명한 자가 나타났다. 그는 길을 헤매는 이들을 멈춰 세웠고, 자기 자신을 때리던 몽둥이를 내려놓게 했다. 사람들을 가르쳐 인간을 인간답게 했으며,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안에서 빛나는 질문들을 다시 꺼내들게 했다.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스승이라 불렀다.

 

21세기 첨단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오래된 고전을 펼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위대한 스승을 만나기 위해. 그들의 지혜를 참고함으로써 오늘 내 안의 혼란을 멈추기 위해. 빛나는 고전을 남긴 위대한 스승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태어났음에도 공통적으로 우리가 다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잊고 있던 빛나는 질문들과 대면하게 했다. 나는 무엇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이 둘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부터 위대한 스승들을 만나볼 것이다. 그들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그것이 오늘날 나에게 어떤 길을 제시하는지 생각해볼 것이다. 그럴 때, 가려져 있던 오솔길이 드러나고 우리는 내 안의 아기 코끼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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